최근 서울의 심장부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의 대규모 공연은 한국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국가가 대중문화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보여주는 거대한 축소판이었습니다. 언론은 수만 명의 인파, 수조 원에 달한다는 경제적 파급 효과, 그리고 '국격'의 상승을 앞다투어 보도했습니다. 화려한 조명과 완벽하게 기획된 무대, 열광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분명 압도적인 스펙터클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설가이자 한때 사회부 기자로서 현장을 뛰었던 제 눈에 이 화려한 무대는 단순히 세계적으로 성공한 아티스트의 축하 공연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이 거대한 이벤트의 이면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거나 너무나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여겨온 한국 사회 특유의 시스템적 징후들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집중된 공권력의 편의주의'와 '문화 전체주의'라는 두 가지 뼈대입니다.
1.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공권력의 스펙터클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지점은 이 거대한 행사를 가능하게 한 물리적, 행정적 토대입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수만 명의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 병력, 교통 통제를 전담한 지자체 공무원들, 그리고 행사 전후로 투입된 수많은 청소 노동자들의 숫자는 그야말로 기록적입니다. 공연 당일 광화문 일대의 교통은 전면 통제되었고, 시민들의 일상적인 이동권과 생활권은 '국가적 경사' 혹은 '세계적인 문화 행사'라는 명분 아래 유예되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특정한 국가적 목표나 거대 이벤트를 달성하기 위해 자원을 단기간에, 그리고 극도로 효율적으로 집중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올림픽이나 엑스포 같은 메가 이벤트들이 그러했고, 지금의 대규모 대중문화 행사 역시 방식만 세련되어졌을 뿐 그 본질적인 궤를 같이합니다.
문제는 이 '효율성'이 민주적 절차나 시민 개개인의 불편에 대한 세밀한 배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철저한 상명하복식의 행정 편의주의와 거대 공권력의 물리적 동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거대한 경찰 버스들이 차벽처럼 광장 주변을 에워싸고, 형광 조끼를 입은 수많은 공권력이 특정 연예인의 무대와 관람객을 보호하기 위해 질서를 주입하는 풍경은 기묘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안전 관리'라고 부르며 합리화하지만, 그 기저에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국가 주도의 통제 가능한 질서'를 지상 과제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상의 불편을 감수하라는 무언의 압박은, 이 거대한 시스템이 평범한 시민의 일상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2. 광화문이라는 공간의 정치적 전유
광화문 광장은 한국 현대사에서 단순한 아스팔트 도로나 공원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곳은 시민들이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때로는 치열한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의제가 표출되는 민주주의의 최전선이자 공론의 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치열한 정치적, 역사적 공간이 국가의 전폭적인 행정 지원 아래 거대한 상업 팝 콘서트장으로 변모했습니다.
이 공간적 전환은 결코 우연이거나 단순한 장소 섭외의 결과가 아닙니다. 국가가 특정 대중문화 아이콘에게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내어주고,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공권력을 촘촘히 배치하는 행위는 팝 문화를 국가의 통치 장치 안으로 포섭하려는 시도로 읽어야 합니다. 광화문에서 울려 퍼지는 팝 음악은 이제 개인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대중 예술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계 속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증명하는 국가적 찬가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광장이 본래 가지고 있던 저항성과 다원성은 매끄럽게 포장된 'K-컬처'의 화려한 위용 아래 조용히 소거되고 맙니다.
3. 'K'라는 접두사가 지우는 개인의 서사와 노동
언론과 정부가 즐겨 쓰는 'K-팝', 'K-컬처'라는 프레임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폭력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아티스트가 이룬 예술적 성취와 세계적인 성공은 그들 개인과 기획사의 치열한 고민, 뼈를 깎는 노동, 그리고 무한 경쟁 시장을 뚫고 살아남은 생존의 결과물입니다. 그들은 햇빛 들지 않는 지하 연습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미래를 담보 잡히고 춤과 노래를 연마했던, 사실상 극도로 불안정한 노동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공을 거두는 순간, 국가 시스템은 재빠르게 그들 이름 앞에 'K'라는 접두사를 붙여 국가의 고유 자산으로 환원해 버립니다. 국가는 이들의 성공 과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바가 거의 없거나 방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의 달콤한 과실은 '대한민국의 국격 상승'이라는 이름으로 손쉽게 편입됩니다. 광화문 공연은 이러한 '국가적 가로채기'의 화룡점정입니다.
국가 기관이 나서서 이들의 무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고위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숟가락을 얹으며 축사를 보내는 모습은 씁쓸합니다. 아티스트 개인이 겪어낸 고유한 서사와 창작의 고통, 기획사의 자본 논리는 투명하게 지워지고, 오로지 '국가를 빛낸 영웅'이라는 평면적인 타이틀만이 남습니다. 이는 개인의 노동과 성취를 국가라는 집단의 영광으로 덮어버리는, 매우 세련된 형태의 전체주의적 발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4. 자본과 국가의 결탁, 그리고 비용의 사회화
이 스펙터클을 경제적인 관점, 즉 자본과 시스템의 결탁이라는 측면에서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자사의 아티스트를 홍보하고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최상급의 무대가 필요합니다. 반면, 국가는 정치적 지지율을 제고하고 대외적인 국가 브랜드를 포장하기 위해 세계적인 아이콘이 필요합니다. 광화문 공연은 이 두 거대 권력, 즉 '자본'과 '국가'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물입니다.
기획사는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차지함과 동시에 국가가 제공하는 막대한 공권력(경찰, 행정력)을 무료 또는 저비용으로 이용합니다. 사기업의 이윤 창출 행위에 공공재인 행정력이 대거 동원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과 영광은 기획사와 아티스트, 그리고 치적을 쌓은 정치인들이 독식하지만, 교통 마비로 인한 시간적 손실, 행정력 낭비, 다음 날 아침까지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공공의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 사회 전체에 전가됩니다. 철저한 이익의 사유화와 비용의 사회화가 작동하는 시스템입니다.
5. 문화 전체주의와 침묵을 강요당하는 소수 시민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이러한 국가적 메가 이벤트를 둘러싸고 형성되는 '문화 전체주의'적 분위기입니다. 수만 명의 관중이 일사불란하게 환호하고, 언론이 일제히 찬사를 보내며, 국가가 이를 보증할 때, 이 거대한 열광의 파도 속에서 이견을 제시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방탄소년단이 국위를 선양하고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내는데, 그깟 교통 체증 하루쯤 참지 못하느냐"는 식의 다수의 폭력적인 논리가 사회 공론장을 지배합니다. 이 논리 앞에서는 출퇴근의 어려움을 겪는 소시민의 불만이나, 막대한 세금과 공권력 투입의 적절성을 따져 묻는 합리적인 비판조차 '눈치 없는 짓', '이기적인 불평', 심지어 '비애국적인 태도'로 낙인찍힙니다. 집단의 거대한 영광을 위해 개인의 비판적 사유와 일상의 소박한 가치가 억압당하는 현상,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건강하고 진정한 문화 선진국이라면, "나는 BTS의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고, 퇴근길 내 버스가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가 시스템적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국가주의적 자부심이 시민 개개인의 다양한 취향과 권리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아름다운 문화가 아니라 소프트 파워라는 가면을 쓴 또 다른 형태의 억압입니다.
6. 성실한 기록자로서 남기는 질문들
기자 시절 수많은 사건 사고와 행사 현장을 취재하며 제가 거듭 확인한 진실이 있습니다. 거대하고 화려한 스펙터클 뒤에는 항상 시스템의 거대한 톱니바퀴로 소모되는 이름 없는 이들의 노동과 개인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소설가가 되어 한국 사회의 이면을 활자로 기록하는 지금도 그 분석의 틀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광화문 광장의 그 화려한 조명이 모두 꺼지고 난 뒤의 새벽 풍경을 상상해 봅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묵묵히 치우는 하청업체 소속 환경미화원들, 통제선 밖에서 피로에 지쳐 교대 시간을 기다리는 말단 의경과 순경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꽉 막힌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는 평범한 직장인들. 결국 이 거대한 국가적 이벤트를 현실에서 지탱한 것은 'K-컬처'라는 낭만적이고 허구적인 이름이 아니라, 우리 사회 시스템 최하단에서 묵묵히 자신의 노동을 제공한 평범한 사람들의 피땀이었습니다.
문화는 국가가 관리하고 동원하는 대상이 되어서도, 국가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해서도 안 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자유, 그리고 전복적인 상상력의 영역에 머물러야 할 대중문화가 국가적 이벤트로 격상되어 광장을 지배할 때, 예술은 그 날카로운 생명력을 잃고 거대한 프로파간다의 부속품으로 변질됩니다. 우리는 아티스트의 훌륭한 창작물을 각자의 방식으로 소비하고 즐기면 그만입니다. 그들을 매개로 위에서부터 주입되는 국가적 자부심에 취해, 정작 내 삶을 규정하는 우리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와 비합리성을 직시하는 비판적 이성의 눈을 가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거대한 찬사가 광장을 빈틈없이 뒤덮을 때, 우리는 그 찬사의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침묵과, 시스템이 청구하는 은폐된 비용을 계산할 수 있을 만큼 서늘하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분석한 한국 사회의 동원 시스템과 문화의 도구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블로그 독자로서, 혹시 이 글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의 입시 위주 교육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형태의 획일성'이나 '청년 세대가 겪는 노동 시장의 구조적 모순' 등 제가 소설가의 시각으로 취재하고 분석해주기를 바라는 사회 현상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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